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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장을 위한 철학 노트] 클라우스 페터 지몬, 감정을 읽는 시간
작성자양하주 작성일2016/03/10 09:57 조회수: 473

왜 내 사랑은 뿌리내리지 못할까?

“이별의 맛은 살아서 맞이한 죽음의 맛이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이고르 A. 카루소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헤어짐의 고통은 절절하다. 먹지도 자지도 못할 만큼 힘들고 괴롭다. 어떻게 살아갈지조차 막막한 상황, 두 번 다시 사랑은 꿈꾸지 못할 듯한 심정이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외로움은 내 마음을 부추겨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서게 할 테다. 사랑만큼 감미로운 게 또 있던가. 그러나 달콤한 순간은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랑이 뜨거울수록 서운함과 오해, 질투와 다툼도 쉴 새 없이 피어나는 탓이다. 관계가 꼬여갈수록 대화도 겉돌기 시작한다. 감정의 골이 깊어가면서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어느덧 파열음을 내며 주저앉고 만다.

벌써 몇 번째인가. 실패를 곱씹어볼수록 헛헛함이 밀려든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면 두려움부터 앞선다. 또 다시 찾아올 상처가 두려워서다. 왜 나는 사랑을 뿌리 깊게 가꾸지 못할까? 나는 과연 진정한 사랑에 이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자꾸만 사랑에 끌리는 내 마음이 원망스럽다.



행복은 반복을 요구한다 

사랑이 짧고 아쉽게 끝나는 이유는 나 때문만은 아니다. 진화 심리학을 연구한 저널리스트 클라우스 페터 지몬(Claus Peter Simon)은 이렇게 되묻는다.

“복권에 당첨되어 평생 행복을 느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행복은 향기처럼 금방 사라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도, 새 차를 사도, 멋진 집으로 이사를 해도, 즐거움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짜릿한 순간이 지나면 이내 다시 무덤덤해질 테다. 왜 그럴까? 지몬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이에 따르면 짧은 사랑은 ‘비정상’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굵고 짧은 사랑이 되레 자연스럽다. 그래야 더 열심히 짝짓기를 하고 후손도 더 많이 만들지 않겠는가.


사랑은 왜 고통스러울까? 

사랑의 감정을 낳는 호르몬은 스트레스 물질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한다면 가슴이 미칠 듯이 뛰거나 금방이라도 멈출 듯 죄여온다. 왜 그럴까? 지몬은 여기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들려준다.
상사병을 앓는 사람은 ‘금단증상을 겪는 마약 중독자’와도 같다. 도파민(dopamine)은 강렬한 쾌감을 주는 화학물질이다. 사랑은 우리 두뇌에 도파민을 가득 안긴다. 하지만 관계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과 아드레날린(adrenaline)이 우리 혈관을 가득 채우게 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몸을 긴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드레날린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심장이 쇼크로 멈출 수도 있단다. 사랑이 꼬여갈수록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아파오는 데는 이런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마침내 사랑을 거머쥐었을 때 우리의 뇌는 도파민으로 가득하다. 마약 중독자가 약물을 맞았을 때와 똑같은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반대로 그토록 바라던 도파민을 얻지 못한다면? “격렬한 욕망, 절망감, 슬픔, 탈진”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약을 얻지 못한 중독자처럼 말이다.


우리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 

학자들에 따르면, 사랑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은 기껏해야 1년 6개월 정도 이어진다고 한다. 오래된 연인들의 표정이 덤덤해지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지는 않다. 황혼에 이르러서도 사랑을 이어가는 ‘연인 같은 부부’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호르몬의 마법을 이겨낸 ‘돌연변이’들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페터의 과학적인 설명을 계속 들어보자.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지배하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진 뇌는 머지 않아 보다 새롭고 더욱 강렬한 자극을 바라기 마련이다. 강렬한 사랑에 ‘중독’된 사람이 관계를 오래 끌고 가지 못하는 이유다.
오래된 사랑은 ‘중독된 사랑’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페터에 따르면 안정된 사랑은 옥시토신(oxytocin)이 이끈다고 한다. 옥시토신은 엄마와 아기 사이에 흐르는 호르몬이다. 엄마는 아기를 무조건 사랑하고 아기는 엄마에게 한없이 기댄다. 둘 사이에는 의심이 없다.

진화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옥시토신이 분비되도록 이끌었다. 여성 혼자 아이를 볼 때보다 남녀가 함께 아기를 키우는 쪽이 더 생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진화의 흔적은 우리의 언어 습관에도 남아 있다. 연인들끼리 상대를 ‘아기(baby)’라고 부르는 모습이 그렇다.

옥시토신은 강렬하지 않다. 그러나 따뜻하고 안정적이다. 쾌감은 짜릿할수록 빨리 질려버린다. 불꽃같은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기는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 달이고 몇 해고 계속 흥분한 채 지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반면, 은은하고 따뜻한 감정은 오래간다. 도파민, 옥시토신 같은 과학적 설명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오래가는 사랑’의 비결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관계의 묵시록을 넘어 

내 사랑을 뿌리 깊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몬의 말대로 하자면, ‘옥시토신적인 사랑’을 꾸려야 할 듯싶다. 부모와 자식 같이 믿음으로 가득한 관계를 가꾸라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재앙 같은 부자지간, 부녀지간도 적지 않다. 지몬은 사람 사이를 지옥으로 이끄는 ‘관계의 묵시록의 5단계’를 일러준다. 이 다섯은 ‘비난’, ‘경멸’, ‘자기방어’, ‘회피’, ‘권력의 자기과시’이다.

이 다섯 가지로 우리의 사랑을 점검해보라. 우리 사이에는 이 다섯 개 가운데 몇 개가 자리 잡고 있는가? 혹시 상대에게 비난의 말을 쏟아붓고 있지는 않는가? 그에게 경멸 섞인 빈정거림을 쉴 새 없이 내뱉고 있다면, 대화가 말다툼으로 여겨져 자꾸만 나를 정당화하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내보이려 하고 있다면 관계는 이미 이별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래 가는 관계는 어떨까? 지몬은 “존중받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강력한 최음제”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곤 한다. 훌륭한 부모들도 그렇다. 그들은 언제나 자녀를 푸근하고 배려심 깊은 눈으로 대한다.

연인 사이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불같은 사랑이 ‘이벤트’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영원하긴 어렵다. 성숙한 인격으로 아이를 대하듯 상대를 보듬고 배려하려는 노력은 내 영혼에 이해와 인내의 힘을 키운다. 뿌리 깊은 사랑을 가꾸고 싶다면, 자녀를 사랑하듯 서로에 대해 애정을 키워가는 오래된 부부들의 지혜를 배울 일이다.

글안광복 | 철학 교사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서강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철학, 역사를 만나다], [열일곱 살의 인생론],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 등이 있으며 지금은 서울 중동고에서 철학 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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